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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시절 독립운동을 모티브로 한 하정우, 전지현, 이정재 주연의 영화 암살을 관람하였습니다. 먼저 1930년도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다양한 독립운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영화애 전반적 줄거리와 안옥윤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에 대해서도 소개해 보겠습니다. 

영화 암살포스터
영화 암살

 

1930년대 식민지 정책과 독립운동

 

1929년 대공항은 일본의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에 일본 내부에서 군부가 정권을 차지하면서 일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용하여 만주사변 그리고 중일전쟁까지 일으킵니다. 이 시기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은 '황국 식민화 정책'으로 불리며 일본과 조선의 조상이 하나라는 '내선일체론'을 내세워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고 자는 것입니다. 이에 신사 참배와 궁성오배 그리고 황국신민서사를 암기해야만 했으며 교육기관에서 한글교육과 역사교육은 중단되었습니다. 또한 산업적으로 병참기지화 정책으로 북쪽에 군수공업을 발달시켰고 이때 우리나라의 지하자원이 일본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일제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는 항일운동이 활발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는 민족말살통치에 반발하는 민족문화수호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해외에서는 만주와 중국 관내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이 활발히 일어났습니다. 또한 한국 애국단을 중심으로 일본 주요 인사들을 암살하는 활동이 활발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 

 

한일병합 직후인 1911년 염석진은 손탁호텔에서 이완용과 데라우치 마시타케 총독 암살 시도를 하려다 실패하고 종로 경찰서에 잡혀 가지만 밀정이 되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고 풀려납니다. 데라우치 총독 암살사건 뒤에는 친일파 강성국의 아내인 안성심이 있었습니다. 강인국은 아내와 염석진의 탈출을 방조하지만 쌍둥이 딸을 제외하고 모두 사살하라 명합니다. 유모는 두 딸 중 하나인 안옥윤(전지현)을 데리고 만주로 도망갑니다. 20년이 지나 염석진은 독립운동진영에서 스파이 역할을 합니다. 김원봉은 친일파 강인국과 카와구치 소장을 암살하는 계획을 세우고, 염석진은 이를 일본에 알리고 조선인 살인청부업자인 영감과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을 고용해 암살단의 청부살인을 의뢰합니다. 암살단 3인방은 경성에 도착해 마담을 만나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시기 하와이 피스톨도 경성에 도착하고, 기차에서 일본 해군 장교 행세를 하면서 만난 가와구치 슌스케와 친분을 쌓게 됩니다.안옥윤은 카와구치 대위의 결혼식에서 암살 임무를 완수하고 죽겠다고 합니다. 한편 염석진은 헌병대원이 되어 마담의 가게를 찾아오고 마담은 마지막 통화를 남긴채 자살합니다. 미츠코와 안옥윤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미츠코는 안옥윤을 찾아가 아버지를 설득해 보겠다 합니다. 이때 들이닥친 강인국은 주저 없이 아빠라고 부르는 미츠코를 안옥윤이라 생각해 쏘아버립니다. 숨어있던 안옥윤은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강인국의 집으로 찾아갑니다. 그녀는 언니 대신 결혼식장에 신부가 되어 암살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결혼식장에서 부케 속에 숨겨둔 총으로 가와구치와 헌병들을 사살합니다. 이후 조선은 해방을 맞이하고, 1949년 염석진은 경찰 고위간부로 살아남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친일행위에 대한 재판을 받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재판장을 나온 염석진은 안옥윤을 보게 되고, 그녀를 따라 들어간 골목길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녀를 보고 놀라고, 안옥윤 일당은 염석진을 처단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의사를 모티브로

 

극중 안옥윤의 이름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그녀의 모티브가 된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습니다. 남자현 의사는 1872년 안동에서 태어나 김영주와 혼인하였습니다.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남편은 전사하여 그녀는 홀몸으로 아이들과 시부모를 봉양해야만 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부친도 의병에 참여하게 되고, 부친을 도와 독립운동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3.1 운동이 있던 해, 그녀는 평화적인 방법보다는 적극적인 무력 투쟁만으로 독립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여 아들을 데리고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시켰고, 자신도 독립운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습니다. 황제 순종이 장례식에 조선 총독 사이토가 조문 온다는 소문이 있었고, 그녀는 총을 들고 창덕궁으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암살은 실패하였고 철수하게 됩니다. 1933년 일본이 세운 만주국에 관동군사령관인 무토 노부요시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가기도 전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버린 그녀는 일본 영사관 감옥에서 고문을 받았고, 보석으로 풀려나지만 결국 순국합니다.